[036] Storytelling-zero : 잃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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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이미 예전에 닷콩에 올렸던 거에요.
그런데 다시 올리는 이유는요^^;; ㅎㅎ
스토리텔링을 시작하고.. 생각해보니.. '하여가'에 대한 답인 '단심가'로 시작된 첫 번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미 스토리텔링을 시작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성탄절의 기적을 경험한 날.. 오빠에게 소중히 전달했던 이 글.. 생각해보면 이번 스토리텔링의 시작은 이미 작년에 시작이 된 거였어요. 그래서 다시 제로로 돌려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Storytelling-zero : 잃어버린 ]
am8:23, 왜,오늘밤에야,잃어버린,그날이,떠오를까.한참오는동안,무언가를,잃어버린,것,같아. 귓가에 들리는 낮은 음악 소리에 눈을 뜬다. 비스듬히 누운 채로 눈을 뜬다. 잠에서 깨는 그 순간, 하루 중에서 가장 몽롱한 그 순간,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위층 보일러에서 물이 샌 이후로 존재성을 명확히 드러낸 곰팡이들이다. 베개 밑으로 손을 넣어 휴대폰을 든다. am8:24, 왜,오늘밤에야,잃어버린,그날이,떠오를까.한참오는동안,무언가를,잃어버린,것,같아. 1분 동안 반복되고 있는 알람을 끄고, 7분 뒤로 알람을 다시 맞춘다.
second 1
곰팡이를 자세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루에 곰팡이를 보게 되는 순간은 많아도 두 번이다. 하지만 그 두 번은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두 번이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물방울이 맺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떨어질 듯하면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물방울은 마치 중력에 이끌리는 사과처럼 그렇게 천장에 붙어 있다. 물방울에게 천장은 천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물방울에게는 천장으로 보였을지도. 물방울은 결국 단 한 번도 침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침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천장에 달라붙을 수 없는 것처럼. 대신 물방울은 하나의 무늬가 되어, 마치 본인이 머물렀던 곳을 지도로 만든 것처럼, 그렇게 남았다. 다만 물방울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곰팡이.
am8:31, 왜,오늘밤에야,잃어버린,그날이,떠오를까.한참오는동안,무언가를,잃어버린,것,같아. 분의 시간은 빠르다. 잠드는 느낌을 겨우 느낄 때쯤 다시 알람은 울린다. 휴대폰을 그대로 쥔 채로, 이번엔 머리를 베개에, 일직선으로 묻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다. am8:33, 감각을 잃은 순간의 1분은 감각 없이 지나간다.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까지, 나의 감각 시계는 단 1초도 지나지 않았다. 하나에서 일곱을 세기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현대의 시간은 2분 지난다. 현대의 시간에서 초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분이다. 약속시간 10시, 10시 1분은 중요하다. 하지만 9시 59분 59초는 상관없다. 반복된 10시 1분은 나를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반복된 9시 59분 59초는 나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습관처럼 휴대폰으로 메일함에 들어가 수많은 광고 메일을 지운다. 메일을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분이면 족하다. 1분 동안, 수많은 메일들 사이, 그 사이에 있는 필요한 메일을 찾는다. 받은 편지함을 확인 하고 난 후에는 스팸 메일함으로 들어가 본다. 삭제. 메일함을 빠져나와 휴대폰 배경화면 정 중앙에 떠 있는 시간을 본다. 8시 34분. 1분의 삭제.
현실로 돌아오는 건 한 순간이다. 지잉하고 울리는 휴대폰의 진동음은 나를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의미 없는 번호의 나열. 아마도 대출과 같은 광고 전화이겠거니 생각하며 끊지는 않고 그저 소리를 무음으로 전환한다. 지금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른 채 현실의 시간에서 끊임없이 전화를 돌리는 그는, 5초만 더 있다가 전화를 끊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9시 2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한겨울에도 신고 있는 대나무 슬리퍼에서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차가움에 한 번 눈을 감고, 화장실 창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또 한 번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다. 눈을 뜬다.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 보지 못한 척 화장대를 지나치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일상으로의 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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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알람으로 맞춘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던 적은 없다. 한 마디를 지나치기 전에, 그 전에 눈을 뜨고, 두 마디가 끝나기 전에 또 다시 잠이 들거나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찾아 알람을 껐다. 멍하니 눈을 뜨고 있는 순간에 알람으로 맞춰둔 음악이 귓가에 계속 들린다고 해도, 그건 들리는 게 아니다. 그저 흐르고 있을 뿐인, 그저 반복되는 알람일 뿐. 하지만, 의미 없이 설정해 놓은 음악 하나에 치유를 받기도 한다. 왜,오늘밤에야,잃어버린,그날이,떠오를까.한참오는동안,무언가를,잃어버린,것,같아.이제와,허탈한,마음이,좀,혼란스러워,부지런히,달렸는데,왜이리된거야,잠깐만,언제였을까,나,저,멀리에,널,두고온걸까. 조용히 작은 소리로 읊조려 본다. 이젠,진정,원한걸,말할거야,더는,걱정하지마,잠시,헤맸을,뿐인걸,절망하지마,반드시,찾아낼테니. 의미 없음. ‘의미’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휴대폰으로 눈을 돌린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천장을 향해 뻗어본다. 휴대폰 옆으로 살짝 내비치는 곰팡이는 여전히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ps. 오늘 하루, 우리 퐐로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셨어요~? 우리 꼭 붙잡아요. 두 번 다시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게.
댓글목록
달콩T님의 댓글
매냐님들 덕분에 재밌는 하루를 보냈죠^^ 별언니~우리 같이 잡아줘요. 넘어지지 않게...잃어버리지 않게♥
taiji0707님의 댓글
글 정말 좋아요♡막~몰입되고
가사 부분엔 오빠 노래소리 들리다
눈물나요(눈물)
SeolA님의 댓글
하아~ 이밤에 또 쳐울쳐울ㅠㅠ
유별난여자님의 댓글
ㄴ 달콩~ 우리 함께 잡아^^ ㄴㄴ taiji0707님~ 아침마다 오빠의 목소리로 눈을 뜨는데.. 그게 설레기도 하면서도 때론 막 애닳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매일 듣고.. 그렇게 눈뜨고 싶어요...^^ ㄴㄴㄴ SeolA님... (눈물)
태지안에서님의 댓글
유별님.. 멋있어요.. ㅎㅎ 이런 글이 어찌 나왔는지 알 것 같아요 ㅎㅎ
렌짱님의 댓글
유별~완전멋지당.
막막 영감님이 오셔??
어쩜 이리도 글을 잘쓰누 부럽부럽
오랜팬이제는님의 댓글
유별님...정말 멋져요..
몰입도 최고입니다. 스토리텔링 보면 볼수록 기대기대 또 기대됩니다...^^
봄님의 댓글
휘몰아치듯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다가 문득 순간 멈췄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죠. 일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시간들부터 공간들까지 찰나의 순간을 매워가는 가는 비로소 보이는 작은 것들 중 현실의 나를 보여주는 세밀한 부분이 때로는 못견디게 부정하고 싶은 것들부터 발견의 환희를 느끼게 하는 것들까지 실로다양한데요,,,,,, 어쩌면 나는 자꾸 나를 잃어가면서 먼 희망만을 꿈꾸며 살고 있는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되네요. 마주하고 있는 어쩌면 잃어버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하는 글입니다.
삶은 뒤돌아가는 순간부터 잃어버린것 투성이지만 잘만 살아내면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로소 잡을 수 있었던 무수한 기회의 연속이었음을 또 깊이 깨닫게 되는 오늘 하루입니다.
유별님......전에도 느꼈듯이 상당히 디테일한 유별님의 글은 상당히 건조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네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유별난여자님의 댓글
ㄴ 태지안님.. 태지 안에 계셔서 심안을 가지신..ㅎㅎㅎㅎ 감샤해용~ (귀요미) ㄴㄴ 렌짱~ㅎㅎ 으쯔다가 한 번씩 영감님이 아주 잠깐! 오시는강??ㅎㅎ 좀 길게 머물다 가셨음 좋겠어 ㅎ ㄴㄴㄴ 오랜팬님~ 너무 기대하시면 아니 되어요..ㅎㅎ (뿌잉뿌잉)
유별난여자님의 댓글
ㄴ 봄님.. 정말 어느날 문득,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다 보면 주위 환경이 아주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요즘은 그런데 그럴 때면 아주 잠깐, 단 1초만이라도 멈춰 서서 그냥 주위를 하나하나 눈에 담는 연습을 해요. 1초만 멈춰라고 했던 오빠의 말이 계속 생각나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아주 짧은 그 1초의 순간이 잠깐 잃었던 나를 되찾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조금 슬픈 건요.. 겨우내 찾게 되는 따뜻한 1초의 순간이 저에게 더 소중한 이유가.. 99%의 제 일상이 건조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때문이에요.. 봄님~ 항상 제 글 읽고 좋은 생각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귀요미)
마법사태지님의 댓글
아는 닉넴이 보이니 반갑네요~~
순무님의 댓글
와아~ 글 정말 잘 쓰신다.. (귀요미)
박근우님의 댓글
대단하군요
유별난여자님의 댓글
ㄴ 마법사태지님~~ 방가워용 ㅎㅎㅎ ㄴㄴ 순무님~ (귀요미) ㅎㅎㅎㅎ 고마워용>.< ㄴㄴㄴ 박근우님 ㅎㅎ 대단하지 않은데.. 감사해요^^ (뿌잉뿌잉)
우리들만의추억님의 댓글
왜 이렇게 글을 잘쓰는거야...또 울컥 (눈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