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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매냐의 뒤늦은 연말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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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웃는집 회원 정보 보기 작성일 15-01-06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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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메주 쑤어 매달아놓고, 우엉차 덖다 말고 연말콘 다녀온 산골 매냐입니다.

집에 내려오자마자 우엉차 마저 덖고, 양파즙 달이고... 이제사 시간 내어 뒤늦은 후기 적어봅니다.

(글을 짧게 쓰는 재주가 없어 미리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30 일 공연은 서태지 컴백과 동시에 올출을 선언한 동생과,

9집 신생이 된 언니를 양쪽에 끼고 함께 갔답니다.

연로한 (?) 언니(55세)를 모시고 가느라 지정석으로 예매를 했는데

뮤지컬 볼 때 외에는 자리에 앉아보질 못했네요.

 

한곡 한곡 나올 때마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한 선곡에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밥!!” 이거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공백기 동안 노화가 급 진행된 탓에 반응속도가 느려져 박자를 놓치긴 했지만 

오호호호 ~ 중요한 건 나도 ‘밥!’을 외쳤다는 거죠.

태지가 기타를 둘러메는 모습을 보고 ‘설마? 필승?’ 했는데

우와 ~~~ 정말 미춰버리는 줄 알았어요.

언니는 태지 노래 역주행 중 빠져든 버뮤다가 나오자 꺄악꺄악 소리를 질러댔고요.

 

필승을 비롯해 1996, 라이브와이어는 간절하게 나와주길 바라는 하는 곡이었기에 

전주가 들리자마자 가슴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어요. 

에펨은 19금이라 못 나올 줄 알았는데 떡 하니 나와버렸네요.  

오랫동안 짝사랑 하던 남자에게 고백을 받는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첫 공연은 그런 묘미가 있네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한곡한곡 소중하게, 정성껏, 긴장하며 기다리는 마음, 그 짜릿함 말입니다.

 

31일 공연은 딸내미와 동생, 이렇게 셋이 갔습니다.

원래는 30일 공연이 끝나고 다음날 집에 내려갈 계획이었어요.

외로움에 떨며 부들부들 하고 있을 남편을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31 일 눈소식이 있어 기대를 걸긴 했어요.

집이 깊은 산골이라 눈이 좀 쌓인다 싶으면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날씨를 핑계로 31일 공연까지 볼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을 했던 거죠.

 

하늘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지만 기적은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집에 내려가기 직전 치과에 들러 신경치료를 받았는데 이삼일 뒤 후속 치료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지킬과 하이드’가 되고 말았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하고 1월 2일에 내려가겠다고 통보하면서

  “우리 둘이 망년회 해야 하는데 어뜨케... 아우 속상해...”

하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로 영혼없는 대사를 읊조렸습니다. 

그 순간 얼굴 근육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지맘대로 씰룩거렸고요.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31일 공연!

무릎이 뽀사지는 한이 있어도 이날은 스탠딩으로 달려야 했습니다.

컴백콘 때 스탠딩의 악몽이 있어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동생과 의논 끝에 대기줄을 서지 않고  10시 직전에 입장하는 것으로

무릎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지요. 

딸내미는 8시 반이 되자 줄을 서기 위해 달려갔고,

우리는 그렇게 이산가족이 되어 공연을 즐겼답니다.

 

딸내미는 원래 리액션이 크지 않은 아인데 이번엔 좀 반응이 유별납니다.

10 대 시절 이모 따라서 뫼비우스 보러다닐 때와 비교하며

그때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동생 역시 역대급이었다는 말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감동을 표현합니다.

전 이전 공연과 비교할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없으니 역대급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훌륭했다, 감동적이었다는 식의 언어로는 결코 전해질 수 없는 공연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뭐랄까 .. 공연장의 공기가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관객석에서 무대로 대류하다

마침내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가 새롭게 생성되는 듯한 느낌...

첫날에는 충격과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 보았던 To Be Green을

다음날 다소 차분해진 마음으로 보고 있자니 

그 엄청난 내용과 의미를 별일 아니라는 듯 잔잔하게 말하고 있기에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큰 감동 뒤에 만난 비록은 아름답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린 것은 팬인 우리들만은 아닐겁니다.

태지 역시 긴긴 시간 우리에게 달려오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기다렸을 거예요.

 

아픔이 있었기에, 애틋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에

더욱 단단해져서 만날 수 있었고

그리하여 함께 보낸 2014년 마지막 순간과 함께 맞이한 2015년의 첫 순간이 더욱 감격스러웠던 것 아닐까요.

 

이제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와 매일매일 열심히 살다가 전 광주로, 대구로 갈 겁니다.

지방콘은 대구만 예매해놓았는데 동생이 엊그제 울 모녀의 광주콘 표를 예매했다고 문자를 보내왔어요.

너무 놀라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전투 끝나면 미친듯이 농사지어 은혜 갚으려고요.

 

딸내미는 광주콘에 가면

사람들이 ‘오빠’를 외칠 때 자기는 '아빠'를 외치겠답니다.

이름이 ‘담’이거든요.

자기가 태어난 해에 서태지와 아이들도 태어났고,

아빠 이름과 정현철의 초성도 같다며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깃발 하나 만들어갈지도 모르겠네요.

‘아빠 담이 와쪄요~’ 쯤 될까요? ㅎㅎ

 

전 8집 활동이 끝난 뒤에 불이 붙은 공백기 신생입니다.

한 2년 뒤엔 나도 공연장에서 젊은이들 틈에 끼어 ‘쩜쩜’ 하며 신나게 놀고 있겠지..

이런 상상을 하며,

dvd 틀어놓고 방바닥이 꺼지도록 쩜프 하며 목이 빠져라 9집을 기다렸습니다.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그 사이 나이만 반백이 된 게 아니라 내 머리도 반백이 되었고

전투비용 마련을 위해 부은 적금은 만기가 한참 전에 끝나 생활비로 다 털어먹었죠.

이빨이 흔들거려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서글픔도 맛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슬펐던 건 당연히 무릎이며 발목 상태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었고요.

 

사는 게 녹록치 않았던 2014년.

사회적으로도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 많이 벌어져 참담함으로 얼룩졌는데 9집을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치유되고 있습니다. 

 

작은 용기와 담력이 필요한 시대에

'그저 내 체온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태지를 격하게 허그해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우리 매냐들의 체온도 태지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믿으며,

앞으로 남은 공연 미친듯이 즐겨보려 합니다.

댓글목록

영원히서블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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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연말콘에서  지정석 제 옆에도  나이 좀 잇으신 여자분 혼자 오셔서 너무 신나게 즐기시던데...비행기도 많이 접어 오시고~
멋지세요~^^(축하)

taijicak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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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저도 반백에 가까운 나이인지라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이번 전투에서 늦게 입덕하신 한을 다 푸시겠어요.지방콘까지 가실 수 있다니 넘 부러워요~~

83박깨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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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재미있게.잘읽었어요^^ 저는.산골은.아니고 촌매니야예요ㅎㅎ 대구콘때만나요~♥

카이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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읔, 신경치료 ;;; 저두얼마저에 겪어서 그 고통을 알지요 ㅠㅠ_ 그래도 역대급 공연을 보셨으니, 그걸로 마취가 되셨으리라 ㅎㅎ

태지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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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다들 내맘 네맘 차이가 없을까요...글을 읽으면 저 또한 느끼던 감정에 울컥했네요~

별들이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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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가 없는데도 울컥하네요
저도 콘서트 가고 싶은데..신랑은 너무 바쁘고 애 봐줄 사람이 없어요

T라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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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후기가 완전 감동이네요!!! 기승전아빠까지~~^^ 저도 광주하고 대구 가는데 흠뻑 빠져 보게요^^

flavor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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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몇번 올리셨던 글이 너무 인상 깊어서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실까 궁금했었습니다 ^^
감동스러운 후기 잘 봤어요.
광주랑 대구후기도 기대할게요~~

영원hary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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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8집때도 따뜻한 글 적어줬던 분 맞으시죠?! ^_^ 편안해지는 글..좋은하루되세요!

♥브라우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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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집님~~~~~~~~~~~~ 닉넴 기억하고 있었어용 ㅎㅎ 이런 따수운 글 써주셔서 감사해용~~~

웃는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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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오랫동안 태지 곁을 지켜준 매냐님들 덕분에
이 벅찬 감동의 순간이 뒤늦게 대열에 겨우 끼어든 저에게까지 차례가 오네요.
태지님는 매냐님들께, 매냐님들은 태지님께 존경과 애정을 보내겠지만 전 태지님과 매냐님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보냅니다~~~

그래너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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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멋지십니다! 사는게 힘들어도 소중한사람하고 추억을 먹으면서 사는게 멋진거죠ㅎㅎ

노랑T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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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끝나면 미친듯이 농사지어 은혜 갚으려고요. 아 여기서 뿜었어요.. 진심 존경합니다. ㅋㅋㅋㅋㅋ (눈물)

tjmogi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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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아이디 보니까 기억나요..8집 뫼비우스 상영회보러 메가박스도 오시고 그랬었었죠..?
너무 반갑습니다...정말..
마지막 문장 공감100배입니다.

T의LOV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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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우왓~!너무멋지세요~!!!!
지방콘까지 가시고. .부러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