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칠세대로서 추억하는 마왕과 대장의 90년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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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IN에서 어떤 피디가 마왕 추모한답시고 '서태지의 화려함에 가려진 신해철의 위대함'이란 식으로 말했다는데, 응칠세대인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이것은 당시 10대들의 교실 분위기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다만 어느 특정 시점만 비교하자면 그렇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적어도 1993년에 국한하자면 말입니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 2집 하여가로 더욱 큰 인기를 얻었고, 전문가들도 하여가의 실험성과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시나위 시절 대장이 댄스그룹으로 활동하는 것을 비난했던 록 매니아들도 '역시 태지는 락커였다'며 다시 호의적인 시선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마왕에겐 암흑기였습니다.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사실, 마왕은 1992년 2월 신검을 받을 당시 위궤양과 신장염으로 귀가 조치를 받았습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70700329116015&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07-07&officeId=00032&pageNo=16&printNo=14458&publishType=00010
그리고 4월엔 교통사고를 당해 무릎이 매우 안 좋아집니다.
당시 입영 기준은 지금보다는 관대했으므로 면제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합니다.
하지만 5월 재검 때는 4급 판정을 받아 1993년에 방위병으로 복무합니다.
대장이 2집 하여가 내기 전 마왕을 찾아가 샘플러 악기에 대해 배웠다는 게 아마 이 무렵일 겁니다.(방위는 출퇴근 가능하므로)
들리는 말에 따르면 연예인 병역 기피 논란이 일자, 국방부에서 마왕을 일부러 본보기로 동사무소에 보낸 것이라고도 합니다.(방위는 지금의 공익)
동사무소 가기 전 훈련소에서 마왕은 부상을 당했지만 얄짤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간간이, 군대에서 다쳤지만 제대로 치료 못 받아서 건강 악화되었단 얘기가 뉴스로 나오는데 마왕이 이런 케이스였다 하네요.
이처럼 방위 생활 도중 여러 가지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은 마왕은 또다시 대마초에 손대고 맙니다.
사실, 마왕은 1989년에 이미 대마초 때문에 경찰서 정모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초범이고, 두 모금만 피운 것이라 해서 금방 풀려납니다. 그리고 몇 달 자숙 후에 솔로 아이돌로 화려하게 재기했죠. 그러나 두 번째로 걸렸을 땐 군복무 중에 사고친 것이라 해서 열 달 동안 옥살이를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마왕은 감옥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엄청난 지식을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즉, 적어도 1993년만 보면, 대장은 황금기이고 마왕은 암흑기였으니, 굉장히 대조적으로 기억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1994년부터는 상황이 많이 달라집니다.
-여담입니다만, 마왕이 처음으로 경찰서 정모 했을 당시 국딩 3학년이었던 저는 9시만 되면 자는 착한(?) 어린이였으므로 마왕의 흑역사를 전혀 몰랐습니다.
국딩 때 대마초 가수 하면, 슈스케 심사위원 하시는 그 분만 알았습니다. ;;;(그 분은 저 당시에도 여러 번 걸리셨던지라...)
마왕 솔로 아이돌 시절 히트곡 '안녕'은 좋아했지만, 노래하는 모습을 TV에서 한 번도 못 봤고, 마왕 출소 후 사진이 제가 첨으로 본 마왕의 모습이라, 마왕 하면 어둠의 지식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최근에 본 마왕의 아이돌 시절 해맑은 사진들은 신선한 충격이더군요.
댓글목록
모카빵빠레님의 댓글

저도 비슷한 나이라서 9시에 KBS에서 어린이는 잘 시간입니다 라고 나오면 바로 방으로 들어가 잤어요.
그런데 안녕때 보긴 봤네요.
슬픈표정하지 말아요때에도...그때 잘생겨서 좋아했는데 ^^
음반을 사서 음악을 들을 줄 몰라서 아빠에게 퇴근하면서 테이프 사다달라고 하면 받아서 듣고 하던때라 티비에 안나오면 거의 음반을 낸지도 몰랐던 때라..
우연히 라디오에서 내마음깊은 곳의너 를 듣고는 너무 좋았는데 노래 제목도 모르고 그래서 녹음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 마왕을 볼 수 없었는데 그때가 암흑기였었나봐요. 지금 찾아보니...
갑자기 또 울컥 하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