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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집 리뷰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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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로타 회원 정보 보기 작성일 14-11-0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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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 원본 글 링크도 같이 첨부합니다.

http://brooker15.tistory.com/7

잠도 안오고 해서 쓱싹쓱싹 한번 써보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앨범 500번쯤 더 들으면 다시 한번 제대로 세세하게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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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가 돌아왔다. 그것도 5년만에 9집 앨범을 들고. 그러나 왠일인지 세상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2010년대의 5년은 90년대나 2000년대의 5년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문화대통령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서태지가 종합운동장을 꽉 채우지 못하다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10월의 차트는 이미 에픽하이가 점령해버렸다. 이렇게 예전만 못한 주목을 받고 있는 서태지이지만, 그가 가져온 9집 역시 그저 그런 작품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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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처 파운드'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소리를 극한까지 쪼갠 사운드를 표방했던 8집 에서 쌓인 내공은 9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하우스비트에 트랩, 그로울 등 다양한 사운드를 빽빽하게 집어넣으면서도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타이틀곡 'Christmalo.win'을 필두로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전체적으로 요즘 떠오르는 UHD 고해상도 화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촘촘한 음의 배열을 통해 쉴틈 없이 귀를 간지럽히다가도 어느 순간 편안한 상태에 빠지게 하는 능력은 분명 그동안의 작업과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어른들의 동화'라는 이번 앨범의 컨셉은 직설적인 가사와 노골적인 내용에 익숙해져 있던 대중들에게는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그간 봐왔던 서태지의 정서와 음악적 지향성을 고려해보면, 잘못된 선택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난해함의 극을 달렸던 8집(5집의 가사도 알쏭달쏭하기로는 뒤지지 않지만, 8집의 가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내용을 하루종일 곱씹어보게 만든다)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갔고, 대중의 감성을 더욱 깊게 건드릴 수 있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아버지가 된 것도 큰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된 아티스트의 작품은 분명 그 전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애초에 태교를 위해 만든 트랙들도 있다 하니, 9집의 컨셉이 이해가 가면서도 서태지도 어느덧 딸바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격동 으로 활동의 시작을 알렸고, 'Christmalo.win'을 타이틀곡으로 삼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트랙은 역시 '90s Icon'이다. 긴 세월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에게 대중은 냉담했고, 방송 및 언론은 칼을 겨누기 바빴다. 시대를 관통하여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만든 그에게 '90년대의 아이콘'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마치 그 생명력이 96년 은퇴와 함께 끝난 것처럼 표현하고, 박제취급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컴백할 때마다 문화를 선도했느니, 혁명을 가져왔느니 업적 운운하며 포장해대다가 은근슬쩍'이제 그도 끝났다'라는 뉘앙스로 조롱하는 방송을 보며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가 겪었던 모든 감정이 이 트랙에 담겨있다.

  얼마 전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책장 한켠에 놓여있던 그의 8집을 꺼내 들어보았다. 5년 전 발매 당시에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던 그 음악이, 너무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소리로 다가옴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이 9집도 지금 평가하기엔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5년 뒤에 이 앨범을 다시 들었을 때 어떠한 평가를 내리게 될지 슬며시 기대해본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 가는 변명들 
세월이 흘러가도 망설임 따위뿐인걸
내 기타에 스미던 둔해진 내 감성 
하지만 난 아직도 멈추지 못할 뿐

한물간 90s Icon 
물러갈 마지막 기회가 
언제일까 망설이네
질퍽한 망상 끝을 낼까

낡아빠진 액자에 갇혀버린 환영들
내 바람과 망상들로 내 방을 채워가네
덧없이 변해간 나는 카멜레온
내 피부가 짓물러도 조용히 감출 뿐

한물간 90s Icon 
화려한 재기의 기회가 
언제일까 망설이네
질퍽한 이 망상 끝을 낼까

난 꿈을 꾸죠 은밀한 
비장함 따위는 아니에요 
전쟁도 끝났죠
나의

눈감은 순간 흩어지는 
바람에 밀려 버려지는 
당신의 삶과 같이한 
너와 나의 쓸쓸한 이야기

해답이 없는 고민
하지만 밤이 온다면
나의 별도 잔잔히 빛나겠죠

         -<90s 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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