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FM음악도시 마지막 클로징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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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는 음악도시의 시민들입니다.
매일밤 열두시에 이 도시에 모이는 우리들은
사실 외형적인 공통점은 그다지 없습니다.
직업.. 뭐, 거주지역.. 성별.. 주위환경.. 이런 게 다 달라요..
그냥.. 우리 공통점은 단 하나..
우리가.. 글쎄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아직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남들이 우리를 푼수라고 부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는 거죠..
저는..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어서,
그 사춘기적인 우쭐함.. (지금 생각했을 땐 그런데요..)
그런 걸로 철학과를 건방지게 진학을 했었고..
근데 학문에는 재주도 없었고.. 가보니까 그런 게 아니었고..
해서..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그 대답을 포기하고 그냥 잊고 사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라는 걸..
그런 거만 배웠습니다..
그리고..
음악도시를 그만두는 이 시점에 와서야..
그 질문에..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이제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 대답은.. 우린 왜 사는가.. 하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라는 겁니다..
아.. 뭐.. 자아실현.. 이런 거창한 얘기 말고..
그냥.. 단순무지무식하게 얘기해서..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찾고 있는 그 행복은..
남들이 우와.. 하고 막 바라보는 그런..
빛나는 장미 한송이가 딱 있어서라 아니라..
이게.. 수북하게 모여있는 안개꽃다발 같애서..
우리 생활 주변에서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고 쪼그만 한송이 한송이를 소중하게 관찰하고..
줏어서.. 모아서..
꽃다발을 만들었을 때야 그 실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음악도시에서 나눈 얘기들은 정치,경제 토론도 아니었구요..
그냥.. 가족.. 학교.. 꿈.. 인생 얘기였고..
인류애나 박애정신.. 그런 게 아니라요..
부모.. 형제.. 친구들..
뭐.. 실연.. 첫사랑.. 이런 얘기였잖습니까..
이 하나하나가 작은 그 안개꽃송이였던 거고..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행복인거죠..
우리는 은연중에 그런 것들을 무시하도록 교육을 받구요..
더 나아가서 세뇌를 받고..
자꾸만 내가 가진 거를 남들하고 비교를 하려고 그럽니다..
근데 자꾸 비교를 하면서 살면..
결국..
종착역도.. 안식도.. 평화도 없는..
끝없는 피곤한 여행이 될 뿐이구요..
인생살이는 지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생이 여행이라고 치면은..
그 여행의 목적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창밖도 좀 보고..
옆사람하고 즐거운 얘기도 나누고..
그런 과정이라는 거..
그걸 예전엔 왜 몰랐을까요..
많은 사람들의 이름하고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우리 꿈많은 백수,백조들.. 제가 얼마나 백수들을 사랑하는지..
또.. 왕청승 우리 싱글들..
발랑 까진 고딩들..
자식들보다 한술 더 뜨던 그 멋쟁이 푼수 부모님들..
또.. 여자친구의 완벽한 노예다.. 라고 자랑하던 그 귀여운 자식들..
그리고 속으로는.. 속마음은 완전히 학생들하고 한패인 그 선생님들..
아이스크림가게의 아저씨..
또.. 청춘이 괴로운 군바리..
음악도시가 자리를 잡고 나니까..
신해철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거리가 됐었구요..
여러분들이 바로..
나의 프라이드고.. 자랑이고.. 그랬어요..
자..
이 도시에서 우리는 혹시.. 혹시..
남들도 나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있지 않을까.. 라고..
조마조마해 하던 것들을 사실로 확인했잖습니까.. 이 도시에서..
우리 국가와 사회를 현재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있죠..
인생은 경쟁이다..
남을 밟고 기어올라가라..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딴놈들은 멀거니 쳐다볼 수 밖에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반납해라..
인생은 잘나가는 게 장땡이고..
자기가 만족하는 정도 보다는 남들이 부러워해야 성공이다..
이런 논리들이요..
우리는 분명히 그걸 거절했었습니다..
이곳은 우리들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구요..
현실적으론 아무런 힘이 없어보이지만..
우리랑 같은 사람들이 있다.. 라는 걸 확인한 이상..
언젠가는 경쟁.. 지배.. 이런 게 아니라..
남들에 대한 배려..
우리 자신에 대한 자신감..
이런 걸로 가득한 도시가 분명히 현실로 나타날 거라고 믿어요..
잘나가서..
돈이 많아서..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거..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대통령도.. 재벌도.. 우리랑 비교할 필요가 없을 거구요..
여러분들이 그 안개꽃다발.. 행복을 들고 있는 이상..
누구도 여러분들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에게는..
언제나 승리자고..
챔피언일 거거든요..
1997. 9. 30..
[신해철의 FM음악도시]..
초대시장 신해철의 마지막 방송 중에서..
댓글목록
팔이팔로님의 댓글

아................
아침의눈꼽님의 댓글

더 이상 이런 당당한 말을 들을 수 없다는게....
초록냥이님의 댓글

ㅠㅠ
펀치님의 댓글

멋지신 마왕 잊지않을게요.
영원01♪님의 댓글

이제 앞으로는... 이렇게 주옥같은 말씀들도 못듣겠네요.. ㅠㅠ
맞아요 결국 지금 현재가 중요한건데.. 미래만 보니까..행복해지려고 오히려 스스로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lungo님의 댓글

.....
대장똘마이님의 댓글

ㅠㅠ
달리아님의 댓글

이런말들이 쌓이고 쌓여 내가 된거겠지요 고마워요 오빠들 내 어린시절을 이토록 풍요롭게 해줘서....
옥이www님의 댓글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봄님의 댓글

늘 잊지않겠습니다
초록나무님의 댓글

잊지않을께요 고맙습니다 좋은곳에서 편히쉬세요
지데렐라님의 댓글

읽고 또 읽네요.... 부디 편히 쉬세요
이내님의 댓글

ㅠ,ㅠ..직장에서 울수는 없고.. 울고는 싶고.. 아웅...마왕..보고싶어요..
순무님의 댓글

아.. 너무 와닿네요.. ㅜ.ㅜ
팅메이님의 댓글

이렇게 멋있는 말 하시는 분인데 ㅠㅠㅠ 너무 공감됩니다...
판피린T님의 댓글

편히쉬세요 마왕 아프지말고..
이너비리스너비님의 댓글

예전 10대들은 행복했어요.. 좋아하는 가수들이 이런 멘토들이라서.. 우리들은 어린시절 이런 가수를 만날수 있어 참 행운이었어요.. 요즘 10대들은 어떨까요? 그들의 아이돌은 이정도로 인생의 가르침을 주는 멘토가 있을까요...전 우리가 10대였던 시절에 그들이 있었다는것이 인생 전반에 걸쳐보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것이 무엇인지 알고 또 알아볼수있었으니까..
티즈토이님의 댓글

참 멋진 사람.
좋은 곳에서 자유롭게 노래하길...ㅠㅠ
라이크님의 댓글

그의 노래로, 그의 존재로, 참 많은 위로 받았는데 ㅜㅠ
이렇게 무심히 가버린 그가 많이 그립네요.................................
kawaimari님의 댓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정말로...안타깝고...이 재능많은 사람을 왜그리 빨리 데려가시는지...에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