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태지 - Quie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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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gym7321/220156362697
8집 이후 5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의 사생활은 추문 혹은 스캔들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앞에 전시되었고, 한 때 가장 충성스러웠던 팬들은 누구보다 앞장 서서 그를 공격했다. 팬덤 밖에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영웅을 바라지 않는 시대, 신비주의는 권위주의로 치환되고 과거의 명성은 콘크리트 같은 현실 앞에 무력해졌다. 서로 재판관 자리에 앉으려는 대중들은 그를 무언가로, 뮤지션이 아닌 무언가로 선고하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서태지는 를 '동화'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결코 동화가 될 수 없었다. 마치 한 줌의 모래가 손가락 틈새로 새어나오듯, 그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이 흘러넘치고 있기에. 이 감정의 윤곽을 하나씩 더듬어 가는 것, 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서태지 음악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실험'과 '파격'이라는 말은 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크리스말로윈>을 비롯한 몇몇 트랙에서 번뜩이는 순간이 포착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작의 과감한 사운드 메이킹에 비해 소극적인 작법으로 만들어졌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운드보다는 곡의 '정서'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양한 사운드 텍스처를 취합하여 밸런스를 맞추고 이 과정에서 어떠한 정서를 '도출'해나갔던 전작과 달리, 본작은 처음부터 곡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를 정해놓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상대적으로 사운드 텍스처(신디사이저가 주가 된)가 간결하고 곡이 표현하는 정서가 직설적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앨범이 그려내는 주된 정서는 '처연함'이다. 이 처연함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한 때 주류질서의 파괴자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오히려 대중에 의해 전복되고 있는 상황('한물간 90s icon', '이 바다의 폭우')과 스스로 체감하고 있는 무뎌진 창작력에 대한 회한('둔해진 내 감성', '가사도 안 떠올라')이 그것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러한 정서가 발현됨과 동시에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앨범 전반에 걸쳐 서태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거나(<소격동>, <읽어버린>), 환상(혹은 동화)을 현실로 대체하는 모습(<크리스말로윈>,<숲속의 파이터>)을 보인다. 그리고 이 대체된 환상 속에서 서태지는 자기 자신에게 절박하게 외친다. 절망하지 말라고, 용기를 내라고.
이러한 '절박함'은 음악과 뮤지션의 거리를 급격하게 좁히는 결과로 나타난다. 곧,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멜로디가 되고 가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서태지의 위용을. 서태지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의 찬란한 멜로디 직조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마치 순풍을 탄 배처럼, 신디사이저가 만들어낸 푸른 대양 위에서 리듬은 노를 젓고 멜로디는 거침없이 질주한다. '내 가슴이 날 이끄는'(Prison Break)대로. 이 과정에서 사운드 텍스처는 멜로디의 활로를 뚫어주는데 집중한다. 특히, 예민한 터치를 통해 다중으로 쌓아올린 모듈라 신디사이저는 메인 멜로디와 끊임 없이 조응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영웅이 필요없는 시대, 우리들의 영웅은 지상으로 내려왔고 이 곳에서 또 다른 투쟁을 하고 있다. 자기 자신과의, 혹은 세상과의 투쟁이다. 는 이 투쟁에 대한 과도기적 기록이다. 그러나 곧 스스로 해답을 찾을 것으로 믿는다. 그에겐 '마음의 원석'을 찾을 용기가 있기에. 아직 못다한 '일천열 가지의 진짜이야기'가 남아 있기에.
댓글목록
프리스타일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여니님의 댓글

잘쓰시네요
June..님의 댓글

좋은 리뷰 잘보고갑니다
초록냥이님의 댓글

와..진짜 어젯밤 마지막 앨범이니냔 분들 계셨는데 전 그런 느낌이아니고 위로를 건네는 희망가로 봤거든요. 글 잘 봤습니다
소쿨님의 댓글

앨범 들으면서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슬프고 우울하고 회한이 섞이고 ..
그럼에도 내려 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 ...
리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