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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보이지 않는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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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유별난여자 회원 정보 보기 작성일 15-07-0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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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 어시장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하나, 둘, 셋. 몇 정거장 남지 않았다. 동동 구르던 발보다 팔이 먼저 앞으로 나간다. 속으로 “아저씨 뭐하노. 빨리 안 가고” 혼자 들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목소리도 동동 굴렀다.

뛰어내리자 마자, 항상 달려가던 레코드 가게. 오늘은 마음이 더욱이 급하다. 며칠 전부터 친구들에게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라며 소리를 질렀다.

넘어질 듯, 버스에서 뛰어내린 내 두 다리는 내 마음보다는 한 템포 항상 느리다. 어시장이 보일 때부터 이미 들어간 레코드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아저씨!!!”

순간, 뭐꼬, 하는 눈으로 나를 뒤돌아 보던 아저씨는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아저씨 나왔어요?”

고개만 끄덕이던 아저씨는, 마치,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브로마이드와 함께 새파란.. 테잎과 CD를 나에게 건냈다.

순간적으로, 내가 바라던 얼굴이 없어 조금 서운했지만, 어차피 1993년부터 내가 바라던 얼굴이 앨범에 나온 적은 없으므로, 1초도 지나지 않아 서운함은 사라진다. 그저, “역시 우리 오빤 다르데이~ 색깔바라~ 색깔부트 달르” 또, 역시 밖으로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고개만 끄덕끄덕.

그렇게 “그는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나에게 날개를 건네주며.

1996년 1월 26일부터 시작되었던 일기는 물론 멈추지 않았다. 2000년 4월까지 계속되었던 내 일기는 그 이후 2015년 3월 1일까지 멈추었다.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나의 새로운 “하루”들. “일기”라는 이름을 가진 그 “하루”들은, 보이지 않는 숫자로 남아 지금도 계속 쓰여지고 있다.

1998년 7월 7일.

그날을 떠올리며, 128일을 맞이한 오늘 하루를 나는 또 세어본다.

KakaoTalk_20150707_233023495.jpg

ps. 오랜만에 닷콩에 글을 남깁니다. 글을 남기진 않고 있지만.. 언제나 제 마음은 여기 이곳에 있다는 것을 오늘 전하고 싶어요. 어제와 다름 없이, “저에게 소격동은 바로 당신, T와 T 안의 그대들입니다.”

2015년 7월 7일. 128일을 지나며. 어디든 T는 있다. 빗속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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