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제3탄 - Heffy End] "하나-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iframe width="640" height="360" src="//www.youtube.com/embed/o1y73HloWiw"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제가 세 번째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곡은 에요. (예전에 하겠다고하고는 이제야...ㅋ)
항상 한 사람만 바라보는 한 사람의 사랑이, 누군가에겐 이해받지 못하는 사랑이 되기도 하죠. 적어도 저에게 이 곡은, 진심을 표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줘요.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해야할까. 나는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되는 일은 ... 잘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 환상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되기'를 무수히 바라고 지향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죠. 누군가의 해피엔드 실제로 누군가에겐 불행의 시작일 수도 있는 것처럼.
그래서 저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랑에, 그 대상이 무엇이든, '되기'를 끝없이 바라는, '너'만을 부르는 '나'의 마음을 한 번 떠올려보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저울에 매단 듯한 그런 사랑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사랑이 아름다울 순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서오빠가 이 곡을 만들 때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곡의 '나'를 바라보는 '너'가 항상 '나'의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들의 사랑이 '동일'할 수 없겠죠. 옆에 있어도 외로운 사랑, 그걸 채우기 위해 끝없이 집착하는 사랑. 가장 불행하고도 아픈 사랑.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뮤직비디오는 '나'의 순수했던 사랑이 왜 집착이란 이름을 가진 사랑으로 변했을까를 고민하게 해줘요.
"이 추악한 이 세상에 두터운 밀랍의 성을 짓고 ......."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제3탄 - Heffy End] : "하나-되기"
프렉탈fractal, 아무리 세분해도 똑같은 구조가 나타나는 도형처럼, 우리의 관계는 프렉탈과도 같았다. 아무리 세분하고, 아무리 다르게 보이려, 감추려 다른 모양으로 둔갑해도 항상 그 모양 그대로이다. 두 번을 잘라도, 세 번을 잘라도, 열 번을 잘라도, 백 번, 수 천 번을 잘라도, 똑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프렉탈이었던 거다 우리는. 하지만 프렉탈을 어떻게 하면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최초의 핵 부분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면, 이제 멈출 수 없는 것이라면.
그와 나는 태양만을 바라던 달이었다. 나와 너무나 다르다 생각했던 그가, 사실은 너무나 닮았음을 깨달았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견딜 수 있을까. 달이 뜨기만을 기다리는, 그 때에만 쉴 수 있음에, 달이 뜨기만을 기다리는 태양을 버리고 이 어둠 속에서만 살 수 있을까.
‘밤이 온다는 건 반드시 아침이 온다는 뜻이다.’ 어디에서 읽었더라, 심오한 소설에서 읽었는지, 흔해빠진 이야기들이지만, 그래서 더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순정만화에서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말만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밤이 온다는 건 반드시 아침이 온다는 뜻이다.’ 그래, 태양이 지고 노을이 하늘에 물들고, 달에 온 밤이 잠식당해도, 또다시 달은 태양에게 잠식당하고 사라진다. 결국 달과 태양은 절대 만날 수 없는 거다. 수 천 년, 수 만 년, 수 억 년이 지나도. 하지만 태양은 항상 달을 기다리고 달은 항상 태양을 기다린다. 그것만이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날 원한다. 원하는 것과 사랑하는 건 다를 수 있는 거였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마음과 믿음을 받을 수 없다. 그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다.
우리를 막는 세상의 벽은 없어도 우리를 하나 될 수 없게 하는 건 결국 마음이었다. 여기에 있어도, 내 안에 들어와 있어도 그를 가질 수 없고, 그를 나라고 느낄 수 없는 건 다른 곳에 두고 온 그의 반쪽 마음 때문이었다.
단 하나, 그래도 나는 그의 몸만은 그의 실체만은 내 것일 수 있다는 데 안도하며 그렇게 그에게 매달린다. 어쩌면 이 세상에 우리 단 둘만 있다면 이런 애달픔은 사라질까. 이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온전한 내 것. 결국 외로움이었나. 그래서 결국 사랑이었나.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더러워, 불결해. 그럼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나. 그는 내 안에 있는데 나는 그를 가질 수 없다. 어떡해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를 가질 수 없다.
네 창가에 가리워진 나의 미련을 감싸 안아
넌 내 옛 기억엔 단 하나의 내 일부분인 걸
네 생명이 이슬처럼 청명함이 남아 있을 때
널 가져가려 해
난 이제 너와 단 둘만의 소망을 이룰게
이 추악한 이 세상에
두터운 밀랍의 성을 짓고
난 너와 너와 깨끗한 해피앤드
ps . 집착은 정말 사랑이 아닌가요?
* '하나-되기' : 이때 '되기'(devenir)는 들뢰즈의 용어에서 착안한 것이다. '되기'는 실제척 의미가 아니라 동사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 용어이다. 모든 대상 혹은 존재를 성격 규정하는 잠재적인 점들로 이뤄지는 계열들이 만나 변신을 낳는 과정 그 자체가 '되기'이다. 이것은 '생성'의 또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댓글목록
아영이님의 댓글

많은 생각이들게 하네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