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00원을 받았던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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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것질을 즐기지 않았고 친구들과 가끔 하교길에 길거리 떡볶이를 먹고 책과 프라모델 구입이 한 달 용돈 쓰임의 대부분이였지요...
가끔 생기는 심부름값, 친인척의 용돈, 명절 등의 부수입이 훨씬 컸던 시절...
그 와중에도 남는 돈이 있다면 동네 은행에 저축도 했답니다...ㅎㅎㅎ
한달에 10,000원...어린시절 제 용돈 이야기입니다.
1992년 저는 중학생이였습니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를 했습니다.
잡설...
전 바로 팬이 되어버렸고 딱 한 번이였지만 태지형이 사는 집에도 찾아가 봤고 동네 누나들 덕분에 방송국에도 자주 갔었습니다.
콘서트요? 당시는 콘서트라는 것이 흔한 일도 아니였고 음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에 초등학교 5학년때 였나? '티파니'라는 외국여가수가 왔을 때랑 전국노래자랑 정도?가 그 당시의 기억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2학년으로 올라가기 전)는 '뉴키즈 온 더 블럭'이 내한을 했었는데 무척 좋아했던 그룹이였지만 콘서트를 갈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 사망사고까지 나서 콘서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하던 시절이였지요...매번은 아니지만 방송국에 가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었습니다. 교통비만 있으면 가능했으니까요...
그렇게 1992년이 지나고 서태지와 아이들도 활동이 끝났습니다.
1993년 6월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태지형 좀 와줘야 되겠는데...'라는 다급(?)한 전화 한 통과 함께 2집 하여가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TAPE로 녹음해서 주말 주일 내내 듣고...학교에서는 친구들과 가사분석(?)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콘서트...콘서트라는 것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하루에 500원...한달이면 10,000원...티켓값은 2~30,000원(예상)...그래...충분히 모을 수 있어...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지 않고 단골이였던 서점과 문구점에 발길도 끊고 저축도 하지 않으며 몇 달을 버텼습니다.
사실 TAPE 한 개도 일주일을 모아야 살 수 있었고 CD는 정말 명절 같은 때 모아둔 돈이 아니면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였지요.
결국 저는 콘서트 비용을 다 모을 수 있었고 '93 마지막 축제를 갈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2층인지 3층인지 좌석의 저 뒷부분에서 겨우 본 것이였지만...심장부터 시작되어 발 끝까지 울렁거리던 그 날의 전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콘서트가 끝나고 오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집에서 공연장까지가 당시 중학생에게는 조금 먼 곳이였기에 서둘러 가느라 제대로 챙겨먹지도 못했거든요...참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서 플랫폼 가판대에서 파는 자유시간과 환타를 사먹었습니다. 그 때 가장 좋아했던 것이 초콜릿바와 환타였거든요. 보고싶던 콘서트도 봤겠다 좋아하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 싶었습니다.(하지만 집에 오는 길에 토했던 기억이 납니다...아까비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이 정도로 생생합니다.
아마 그 때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서태지와 아이들의 콘서트라...솔직히 지금도 설레는데 고작 중학교 3학년짜리의 가슴에는 각인이 되었을 수 밖에요...그리고...
정말로 보고 싶었던 콘서트를 몇 달 동안 열심히 모아서 무사히(?) 다녀왔다는 것에 큰 성취감도 있었겠지요...
부모님께서 콘서트 비용을 주셨다면 느끼지 못했을 그런 느낌도 아마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냥 얻는 것에 대한 집착과 애착과 기억이 본인의 힘으로 스스로 구한 것보다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경험(해결)한 것과 자신이 직접 경험(해결)한 것과는 느낌 또한 크게 차이가 날 것입니다.
무엇이든 쉽고 편하게 얻으면 그만큼 얻지 못하는 것도 생기게 됩니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건에 따라 포기하는 것도 큰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저 역시도 미처 가지 못했던 곳도 있었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도 있었으며 갈 수 있지만 가지 않았던 곳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루 500원의 용돈을 모아서 다녀왔던 콘서트가 떠오릅니다.
무엇인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부터 시작해서 도저히 여건이 따라주지 않으면 포기하는 것까지 그 과정 중에 늘 그 때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의 경험은 저를 늘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일은 제가 평생 잘한 일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추억하고 있으며 제 팬질의 작은 시작이였습니다.
이런 글은 쓴 이유는 누구를 비난하고 잘잘못을 따지기 위함이 아닙니다.
금전적인 이유로, 시간이 안되서, 거리가 멀어서 못 오는 사람도 있고 암표나 대행업체를 이용해 웃돈을 주고 티켓을 구하는 사람도 있고 돈도 시간도 있지만 티켓을 못구해서 못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각자의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겠지요. 그리고 그에 따른 해결방법도 다양할 것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행위가 결과물에 따른 만족감뿐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가지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더라도 그것이 추억이 되고 좋은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서태지'라는 이름과 함께라면 더더욱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댓글목록
Mong님의 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순무님의 댓글

세스타님 글 오랜만이네요..^^ 여기 대부분이 대장과 함께라면 충분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지요..
마법사태지님의 댓글

세스타님 저랑 또래 이시네요~~
글 잘 읽었어요~~
우리모두 태지안에서 행복해요~~
영원히서블리님의 댓글

옳은 말씀입니나. 공감가는 분들 많으실듯~
다음카페승훈맘님의 댓글

그시절~~ 지금처럼 지하철도
잘 되있질않어서 버스 대절이나~
저같이~안양에서가는경우에는 버스몇차래 갈어타고가곤했는데~진짜추억돋네요
술첸펜님의 댓글

옛날생각나네요
우리애기태지여보자기♥님의 댓글

닭살 뿅. 잘 읽었어요. 맞아요, 사람에 대한 이해. 그게 지혜같아요!
봄님의 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릴적 제 기억도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비디오를 사기위해서 돈을 모으고 그렇게 산 비디오를 수도 없이 돌려보던 그 기억이 새삼 생각도 나고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가 행복했던건 서태지라는 이름으로니까요,,,,
박근우님의 댓글

와우!!!